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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쥰] 여름 연애 (회지 샘플)

여름 출근길에 쇼에게 반해버린 쥰, 두 달의 이야기. 2017 우라페스 발매.

금요일 아침. 마츠모토는 지하철 열차 문이 열리자마자 비어 있는 자리를 발견하고서는 성큼 걸어가 냉큼 앉았다. 늦은 밤부터 쏟아부었던 장대비는 아침 해가 뜨는 것과 함께 잠깐 그쳤지만, 여전히 어마어마한 습기가 온몸을 휘감는 것이 느껴졌다. 발자국들로 질척질척한 열차 바닥 위로 사람들 손에 들린 우산들. 떨어지고 튀어 오르는 작은 물방울들. 마츠모토는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바닥으로 툭 떨어진 시선 그대로 여름의 요소들을 무료하게 바라보았다. 비가 온 후라 그런지 그나마 평소보다는 더 강하게 냉방이 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여전한 더위에 셔츠 아래쪽을 잡고서 몇 번 펄럭거리며 고개를 든 마츠모토의 시야에 그때 그 남자가 들어왔다.

마츠모토가 앉은 자리에서 두세 자리 왼쪽 자리 앞에 멈춰 선 남자는 오늘도 더위에 허덕이는 얼굴이었다. 제가 했던 것처럼 반팔 와이셔츠 아래쪽을 잡고서는 몇 번이고 펄럭거려도 열기가 가시지 않는 듯, 천장을 향해 고개를 뒤로 젖히고서는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저렇게까지 더워하다니, 지하철 타려고 뛰어와서 그런 걸까.

남자의 달아오른 뺨, 번들거리는 목덜미를 힐끔거리던 마츠모토는 문득 제 위에 올라탄 남자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남자의 어깨 위를 타고 내려온 땀방울들이 제 가슴팍에 뚝- 뚝-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흐트러진 앞머리의 감촉은 어떨지, 남자의 정수리에서 풍기는 땀냄새가 맡고 싶다는 생각에까지 이르자 머릿속이 저릿해졌다. 아무런 경고도 없이 갑자기 휙- 생각들이 열띤 곳으로 건너뛰는 것을 막기 위해 마츠모토는 머리를 한번 흔들어 젖혔다. 연애를 하게 된다면 종착점에 있는 과정들인 것임에야 틀림없겠지만, 아침부터 공공장소에서 누구인지는커녕 이름도 알지 못하는─사실 이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경우도 꽤 있었지만─ 남자를 보면서 그런 단계까지 벌써 생각할 정도로 그동안 금욕적으로 살아왔구나 싶었다.




언제나처럼의 출근길 루틴을 시작하던 아침. 거래처 담당자로부터의 다급한 연락에 마츠모토는 어깨와 귀 사이에 폰을 끼워 넣고서는 집에서 뛰쳐나왔다. 전주 업무 과정을 여러 번 반추해 보고서는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 만한 일은 아니라고 냉정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지만, 긴급 사태이니 긴급하게 해결해달라는 요청 덕분에 평소보다도 훨씬 정신없는 월요일 오전 시간을 보냈다.

몇 군데 통화를 마친 후 어느 정도 사태가 수습이 되자, 마츠모토는 그제서야 사무실에 도착해서 아직 물 한 모금 마시질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선 크게 스트레칭을 했다. 내부 보고를 거친 다음 다시금 거래처와의 수차례 통화를 하다 보면 점심 식사도 제때 할 수 없을 상황이었다. 새벽녘에 잠도 설쳤을 정도로 더운 날이라 시원한 소바라도 먹으러 갈까 했었는데. 

한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 슬리퍼를 끌며 탕비실로 향했다. 머그컵에 따뜻한 원두커피를 담은 후 제빙기에서 얼음을 꺼내 담고, 제빙기에 물을 채워놓기 위해서 싱크대를 향해 돌아서던 마츠모토는 이번에는 머그컵을 들고 있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탕비실과 공간을 겸한 휴게실, 전면 유리창을 마주한 테이블 앞 높은 스툴에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 남자가.딱 열흘─정말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만나지 못하는 날을 세고 있었다─ 만에 다시 마주친 남자는 오늘은 상쾌하게도 첫 단추를 끄른 옅은 스트라이프 셔츠에 가벼운 회색 정장 바지, 그리고 쿠마몬 그림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 노란색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마츠모토가 지금 신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서 버린 마츠모토에게 탕비실 밖을 지나가던 후배 누군가가 건넨 ‘선배, 좋은 아침!’ 인사 소리에, 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동그란 눈을 크게 뜨며 아는 체를 하는 남자의 표정에 도리어 마츠모토가 더 놀랐다. 나?! 지금 나한테 한 거지? 살짝 둘러보았지만 탕비실 안에는 그들 외에 아무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어색하게 눈인사를 건넸다.

 

“우리 어디서… 봤죠?”

“…네?”

“아 이거, 내 귀에도 너무 작업 멘트처럼 들리기는 하는데.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아요?”

 

보기는 봤는데, 만난 적이 있다고는 해야 할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모른 척 하기에는 마츠모토의 반응도 이미 남자의 표정과 거의 비슷했을 것이었다. 더 했으면 더 했지.

 

“아마.. 같은 지하철 타는 것 같아요?”

“아, 맞아! 어쩐지!”

 

쉽게 잊을 얼굴은 아니니까.

제 허벅지를 가볍게 치며 호탕하게 맞장구치던 남자가 눈을 피하지도 않고선 작게 덧붙인 말에 마츠모토의 마음 한구석이 수런거렸다. 딱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작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서는 제빙기에 물을 채우던 과정을 어색하게 이어나가자, 스툴에 앉아 자신의 옆 얼굴을 보던 남자의 눈길이 자신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훑어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시선을 받는 것에는 익숙할 대로 익숙한 마츠모토였지만, 이런 관계─딱히 정의하기도 어려운─의 상대에게, 그것도 사무실 탕비실에서 이렇게나 노골적인 시선을 받을 줄은 몰랐다. 마츠모토는 온 몸의 신경이 그에게로 쏠리는 것을 알면서도 고개조차 돌리지 못한 채, 물이 차오르는 것을 흥미롭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벌써 반쯤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서버렸지만, 가능한 한 너무 반가운 내색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려 하며 어색하게 진동벨을 들어 올려보았다. 유독 마츠모토의 손을 관찰하는 듯하던 사쿠라이는 아이스 라떼에 꽂아둔 보라색 빨대를 앞니로 잘근거렸다. 그 입술과 치아의 다른 움직임을 보고 싶었다.

 

“여기 앉아도 돼요?”

“네, 편하게 앉으세요.”

“잠깐 시간 돼요? 나 궁금한 게 있는데.”

 

그동안 말 한마디 붙이지 않던 것에 비해 대담하게 스트레이트로 치고 들어오네 싶을 정도로 스스럼없이 말을 붙여오는 사쿠라이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보다도 마츠모토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커피컵을 쥐고 있는 사쿠라이의 왼손이었다. 반지도, 반지 자국도 없었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볼 안쪽을 작게 씹으며, 눈썹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왜 ‘마츠쥰’이에요?”

 

안도 혹은 실망. 다른 질문일 줄 알았는데. 물론 마츠모토 자신도 먼저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 질문─‘애인 있어요?’─이길 기대했던 것일지. 마음이 약간 가라앉으려고 했지만 어쨌거나 스쳐 가듯 들었을 제 별칭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나쁜 신호는 아닐 것이었다.

 

“그게… 학창 시절 별명인데 아직까지 따라다니네요.”

“아하, 되게 연예인 이름 같아요.”

 

마츠모토상 연예인이라고 해도 믿겠지만.

이번에도 중얼거리는 척 하지만 꼭 들으라는 듯한 칭찬을 건네며, 사쿠라이가 얼굴을 똑바로 마주해왔다. 어김없이 마츠모토의 심박수가 마구 올라가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 대사로 상대 마음을 휘젓는 것은 자신의 담당인데. 이런 것쯤에 지지 않을 자신 정도는 있는데. 경기가 시작되는 줄도 모르고 어퍼컷부터 맞고 시작한 것처럼 제대로  포지션을 잡지 못한 채 자꾸만 뒤로 밀려나고 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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